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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심성 복지예산 결국 누더기 변모… 취약계층 더 '벼랑끝'

입력
2015.03.10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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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 비중 30% 돌파" 홍보에도 저소득층 위한 증액 고작 41조

표심만 노린 무상급식·무상보육, 예산 설계없이 도입돼 큰 후유증

올해 우리나라의 복지예산은 약 116조원이다. 정부는 전체 예산 중 복지 예산 비중이 30%가 넘는다는 점을 홍보하고 있지만 복지 예산 내역을 살펴보면 기초연금, 4대연금, 무상보육 등 의무지출의 자연증가분과 기금성 예산의 증가분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저소득층과 장애인 등 취약계층 지원에 편성된 순수 복지예산은 41조원 남짓에 불과하다. 이렇다 보니 지원을 받지 못하는 취약계층이 많다. 정치권에선 복지 예산의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정작 기본적인 사회안전망 구축과 복지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선 오히려 복지 예산을 늘려야 한다는 게 복지전문가들의 생각이다.

GDP 대비 복지지출, OECD 평균의 절반 이하

지난달 국회입법조사처가 내놓은 ‘OECD 주요 8개국 사회복지지출 비교’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GDP 대비 사회복지지출은 10.5%로 OECD 회원국 평균 23.7%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지난해 입법조사처의 ‘국민부담률과 공공사회복지지출 현황과 시사점’ 보고서에서도 국민부담률 대비 공공사회복지지출 비중은 2012년 기준 34.7%로, 비교대상인 OECD 20개국 중 가장 낮은 것으로 지적됐다. OECD 평균은 63.9%이며, 우리는 그 절반 수준이었다. 국민들이 세금이나 연금 등으로 부담하는 돈 가운데 복지에 쓰이는 비중이 다른 나라는 3분의 2에 달하지만, 우리는 3분의 1 수준이라는 것이다.

결국 사회복지 지출을 조정하기 전에 이른바 ‘복지 대란’을 야기한 정치권의 선심성 복지 공약부터 손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예산은 한정돼 있는데 선거 때마다 정치권이 가장 손쉽게 표를 얻을 수 있는 복지 공약을 남발해 복지 예산을 누더기로 만들어버리면서 당장 생계가 어려운 취약계층에게 돌아가야 할 몫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예산 증액은 자연증가분에 따른 착시

지난해와 올해 정부의 복지 예산을 뜯어보면 취약계층 지원 예산은 32%, 노인ㆍ청소년 부문 예산은 38% 증가했다. 그러나 세부항목을 보면 장애인거주시설 운영 지원 예산으로 4,280억원이 새로 책정된 것 외에 다른 항목 예산은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 결국 장애인을 제외한 취약계층 지원 예산은 증가하지 않은 셈이다.

노인ㆍ청소년 부문 예산 역시 65세 이상 소득 하위 노인 70%에게 주는 기초연금 예산의 자연증가분이 반영됐을 뿐이다. 지난해 7월부터 지급돼 6개월치 예산만 반영된 2014년과 달리 올해는 12개월치가 편성돼 기초연금 예산이 2조4,000억원 가량 증가했기 때문이다.

김남희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팀장은 “노인인구 증가와 무상보육 범위 확대 때문에 자연 증가한 기초연금과 무상보육 예산을 빼면 질적인 측면에서 복지 예산이 증가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김 팀장은 “송파 세 모녀 자살과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국민적 관심이 쏠리면서 긴급복지 예산이 지난해 499억원에서 올해 1,013억원으로 103% 상승한 것 정도가 눈에 띄지만 불용액이 매년 수백억원씩 발생하는 등 실제 예산을 배정해놓고도 제대로 사용되지 않는 현장의 문제점을 우선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회복지 담당 공무원과 사회복지사 등 복지 인력이 확충돼야 복지 서비스가 대상자들에게 원활하게 전달될 수 있는데 정부가 예산문제를 이유로 인력 확보에 소극적이라는 것이다.

정부는 2017년까지 복지 공무원 6,000여명을 확충하겠다고 밝혔지만 신규 인력 채용이 아닌 다른 직렬 공무원들의 재배치를 통한 충원이어서 여전히 안정된 복지 전달체계 구축에는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간단치 않은 복지 구조조정

이런 상황에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무상복지 재조정 필요성을 역설하는 등 정치권은 복지예산을 손봐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지금도 복지 수준은 예산 조정이 쉽지 않을 정도로 열악하다는 의견이 많다. 전문가들은 복지 예산은 촘촘한 구조로 설계돼 있어 어느 한쪽을 뚝 떼어 다른 한쪽을 지원하는 식으로 구조조정하기는 힘들다고 지적한다.

지난달 새누리당은 정부 자료를 토대로 7가지 주요 복지사업만 구조조정 해도 연간 12조원이 넘는 재정 절감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연평균 3조5,000억원을 절감할 수 있는 공무원연금 개혁안, 체납액의 20%를 징수할 경우 2조5,000억원을 확보할 수 있는 건강보험이나 국민연금 등을 예로 들었다. 그러나 이런 제도들을 뜯어고치려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해 쉽게 손대기 어려운 상황이다.

포퓰리즘에 요동치는 복지 예산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당시 ‘보육은 국가의 책임’이라며 누리과정(만 3~5세 아동 보육비 지원사업) 확대를 공약했다. 그러나 정작 무상보육 예산은 지방자치단체와 시도교육청이 부담하도록 떠넘기다 보니 갈등이 커지고 있다. 지난해 말 중앙 정부와 지자체 간의 갈등은 결국 정부가 예산 일부를 편성하면서 가까스로 봉합됐지만 예산 분담에 대한 합의나 관련 규정이 없어 매년 비슷한 갈등이 되풀이되고 있다.

특히 올해부터는 복지부가 담당하는 어린이집 보육료 예산을 시도교육청이 부담하도록 해 지방교육재정이 바닥을 드러내며 위기를 맞고 있다. 여야가 10일 누리과정 예산 5,000억원을 목적예비비로 지원하기로 하면서 당장 급한 불은 껐지만 예산 부족으로 인한 ‘보육 대란’은 시한폭탄과 같은 존재다. 대선 공약으로 도입된 정책이 예산 문제로 파행을 거듭하면서 영유아를 둔 부모들은 매년 보육료 걱정으로 불안에 떨어야 하는 상황이다.

무상급식과 무상보육 모두 선거를 앞두고 나온 복지 정책으로 예산 확보에 대한 세밀한 설계 없이 도입ㆍ시행돼 갈등 요인이 되고 있다. 진통 끝에 사회적 합의를 이뤄 어느 정도 정착됐다는 평가를 받은 학교 무상급식도 올해 경남 지역에서는 홍준표 지사의 예산 지원 거부로 무산될 위기를 맞고 있다.

이상은 숭실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제도에 따라서 소득 수준에 큰 관계없이 전체 국민에게 필요한 게 있고 그렇지 않은 게 있다”며 “무상보육과 무상급식을 줄여야 한다고 몰고 나가면 저복지 틀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미 시행된 복지 정책을 되돌리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앞으로는 예산 사정을 고려해 복지 정책의 우선순위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룬 뒤 정책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동 청소년 분야 관련 예산 편성은 소홀

우리나라 노인빈곤율은 2012년 기준 48.5%로 독일, 영국 등 주요 OECD 회원국 중 가장 심각한 수준이다. 지난해 도입된 기초연금은 만 65세 이상 소득 하위 70%의 노인에게 최고 20만원 정도의 생활비를 보장하는 제도로 노인 빈곤 해소에 어느 정도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좀더 많은 노인들에게 혜택이 돌아가야 한다는 주장과 생활비 보조가 절실한 노인들에게 좀 더 높은 액수의 보조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기초생활수급자인 노인의 경우 생계급여를 받을 때 연금 액수를 뺀 나머지만 지급받아 ‘줬다 뺐는다’는 비판도 나왔다. 노인인구가 늘면서 기초연금은 주요 복지정책 중에서도 예산 투입 규모가 가장 큰 사업이 됐다. 복지부는 기초연금 소요 비용이 2015년 10조3,000억원에서 2040년이면 100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기초연금은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으로 투표권을 가진 노인들의 표를 의식한 정책이라는 지적을 받았지만 반면 투표권이 없거나 상대적으로 복지 정책에 대한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아동 청소년 분야 관련 예산은 소외 받고 있다. 보건복지부의 올해 예산 계획을 보면 농어촌, 저소득층 밀집지역 등 취약지역과 어린이집 미설치 지역 등에 대한 국공립어린이집 설치 지원 예산은 지난해 353억원에서 올해 334억원으로 오히려 5% 감소했다. 특히 장애인, 노인 시설은 국가가 직접 관리하는 데 반해 2만명 가까이 되는 아동들을 돌보고 있는 아동복지시설은 지방자치단체 소관이라 재정 문제에서 순위가 밀리는 실정이다. 보건복지부 김원종 복지정책관은 “장애인, 노숙자, 아동 청소년 지원은 매년 예산부족이 지적된다”면서 “특히 아동복지시설이 전체 복지제도 중 가장 취약한 부분 중 하나”라고 밝혔다.

재정 넉넉해도 개선 없는 의료 서비스

재정이 비교적 넉넉한데도 서비스 면에서 큰 개선이 없는 의료복지 분야를 문제로 꼽는 목소리도 높다.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강화하고 민간 공급위주의 의료시스템 개혁을 통해 의료비 지출을 늘리라는 주문이다. 4대 중증질환(암·심장·뇌혈관·희귀난치성질환)의 국가 보장 공약을 내건 박근혜 정부가 소득 하위 50% 환자 진료비 일부를 지원하는 암 환자 지원사업 등의 예산은 깎으면서, 효과가 검증되지 않고 국민건강과의 관련성도 적은 보건산업 육성에 열을 올린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해외환자 유치 진흥책, 뷰티산업 선진화 등 국민 생활과 동떨어진 부분에 대한 과다한 지출부터 줄이라는 것이다. 정형준 무상의료운동본부 정책위원장은 “정부가 의료비 경감 대신 해외환자 유치를 위한 메디텔(의료관광 호텔)설립 규제 완화, 의료비 폭등을 부르는 제약산업 육성 등 산업적 측면에서만 접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건강보험의 막대한 적립금으로 지난해 이자 수익만 1,227억원을 올렸는데, 이 돈이면 600병상짜리 종합병원 하나를 세울 수 있다”며 “그럼에도 장기 입원비 인상 등 환자 복지는 축소하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비판했다.

채지은기자 c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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